Chiu Ya-Tsai Taiwanese, 1949 - 2013 Wen-Chi, 1995 Oil on Canvas Painting 130 x 97 cm 엄마 김종삼 아침엔 라면을 맛있게 먹었지 엄만 장사를 잘할 줄 모르는 행상이란다 너희들 오늘도 나와 있구나 저물어 가는 산허리에 내일은 꼭 하나님의 은혜로 엄마의 지혜로 먹을거랑 입을거랑 가지고 오마 엄만 죽지 않는 계단 ※출처:《김종삼 전집》, 청하, 1990. □ 정끝별 시인 감상 날품팔이 행상하는 엄마들 많았습니다. 상이군이 주정뱅이 아버지들도 많았습니다. 파출부하고 장사하는 엄마들, 실업과 노숙의 아버지들 지금도 많습니다. 산허리에 걸린 초저녁달과 함께 돌아온 엄마의 보자기..
Gerald Norden British, 1912 - 2000 Still life with Bread, dated '88 oil on board Painting 28x38cm 말 조원규 새벽 다섯시 나무의자에 앉아 둥근 빵을 먹는다 소리없는 칼을 넣어 한 조각 잘라낸 먼 해안처럼 둥글고 사원처럼 적막한 살로부터 환한 무엇 허기 속으로 떨어진다 붉은 새의 그림자처럼 빠른 무언가가 슬픔도 기쁨도 잊고 우투커니 앉은 내 속으로 떨어진다 사라지는가 죽음? 응, 사라진다 그것 남은 빵을 바라본다 ※출처:《밤의 바다를 건너》, 문학동네, 2006. □ 정끝별 시인 감상 새벽 다섯시 나무의자에 앉아 둥근 빵을 먹는 사람. 소리 없는 칼을 넣어..
David Hockney British, 1937 'Untitled', Produced in 2020 Offset Lithograph Prints & Graphic Art 26cm x 35cm 백두산 박봉우 높고 넓은 또 슬기로운 백두산에 우리를 올라가게 하라 무궁화도 진달래도 백의(白衣)에 물들게 하라 서럽고 서러운 분단의 역사 우리 모두를 백두산에 올라가게 하라 오로지 한 줄기 빛 우리의 백두산이여 사랑이 넘쳐라 온 산천에 해가 솟는다 우리만의 해가 솟는다 우리가 가는 백두산 가는 길은 험난한 길 쑥잎을 쑥잎을 먹으며 한 마리 곰으로 태어난 우리 겨레여 □ 김재홍 문학평론가 감상 분단 극복과 통일의 염원 새해가 밝았습니다. 이 ..
Chiu Ya-Tsai Taiwanese, 1949 - 2013 Youth in Vibrant Attire, circa 2005 oil on canvasPainting 131.5 x 97.5 cm. 홍탁 송수권 지금은 목포 삼합을 남도 남합이라고 부른다 두엄 속에 삭힌 홍어와 해묵은 배추김치 그리고 돼지고기 편육 여기에 탁배기 한 잔을 곁들면 홍탁 이른 봄 무논에 물넘듯 어, 칼칼한 황새 목에 술 들어가네. 아그들아, 술 체엔 약도 없단다 거, 조심들 하거라 잉! 지금은 목포 삼합을 남도 삼합이라고 부른다 ※출처: 《언 땅에 조선매화 한 그루 심고》, 시학, 2005. □ 정끝별 시인 감상 영혼이나 기질은..
Chiu Ya-Tsai Taiwanese, 1949 - 2013 Girl with No Face Painted in 1994 oil on canvasPainting 76 x 50 ¾ in. 단추를 채우면서 천양희 단추를 채워 보니 알겠다 세상이 잘 채워지지 않는다는 걸 단추를 채우는 일이 단추만의 일이 아니라는 걸 단추를 채워 보니 알겠다 잘못 채운 첫 단추, 첫 연애, 첫 결혼, 첫 실패 누구에겐가 잘못하고 절하는 밤 잘못 채운 단추가 잘못을 깨운다 그래, 그래 산다는 건 옷에 매달린 단추의 구멍 찾기 같은 것이야 단추를 채워 보니 알겠다 단추도 잘못 채워지기 쉽다는 걸 옷 한 벌 입기도 힘들다는 걸 □ 김재홍 문학평론가 감상 늘상..
R.C. Gorman Native American | 1931 - 2005 Rosalie, 1982 lithograph Prints & Graphic Art 28 x 35 inches 어머니 오탁번 어머니, 요즘 술을 많이 마시고 있읍니다 담배도 많이 피웁니다 잘못했읍니다 다시는 안 그러겠읍니다 할아버지 아버지를 잊지 않겠읍니다 밥도 많이 먹고 잠도 푹 자겠읍니다 어머니! ※출처:《오탁번 시전집》, 태학사, 2003. □ 정끝별 시인 감상 '읍니다'라고 자판을 치니 '습니다'로 자동변환됩니다. 악착같이 '읍니다'로 바꾸어놓습니다. 어릴 적 가정통신문에 써주셨던 어머니의 '슴니다'도 기억납니다. 그때도 악착같이 '읍니..
Chuah Siew Kek Malaysian, 1947 ORCHIDS Batik Decorative Art 43 cm x 57 cm 한란(寒蘭) 최승범 옥빛 꽃봉으로 해맑게 부풀더니 한 송이 또 한 송이 눈결에 또 한 송이 벙긋이 벙근 아침은 천하 온통 내 것일레 마음 들뜨지 말라 차분하라 잔잔하라 눈맞춤 눈을 돌려 책장을 펼쳐 들자 방 가득 옥빛 향기 일어 마음 다시 들썩이네 □ 김재홍 문학평론가 감상 난초만큼 선비들의 시문이나 서화에 즐겨 등장하는 소재 또는 제재도 그리 많은 편은 아닐 겁니다. 난초 잎의 곧고 부드러운 선미(線美)는 흔히 선비들의 곧은 지절이나 멋스런 풍류를 일컫는 상징으로 쓰이곤 하기 때문..
Alicja Kappa Polish, 1973 Spirng, 2023 Acrylic, Oil, Canvas,Painting 100 cm x 100 cm 꽃밥 엄재국 꽃을 피워 밥을 합니다 아궁이에 불 지피는 할머니 마른 나무 목단, 작약이 핍니다 부지깽이에 할머니 눈 속에 홍매화 복사꽃 피었다 집니다. 어느 마른 몸들이 밀어내는 힘이 저리도 뜨거울까요 만개한 꽃잎에 밥이 끓습니다 밥물이 넘쳐 또 이팝꽃 핍니다 안개꽃 자욱한 세상, 밥이 꽃을 피웁니다 ※출처:《정비공장 장미꽃》, 애지, 2006. □ 정끝별 시인 감상 할머니 불 지펴 꽃 피워냅니다. 크고 환한 목단꽃이라든가 작약꽃이라든가. 덩달아 부지깽이에도 할머니..
Basia Roszak Scottish LITTLE SISTER oil on canvasPainting 91.5cm x 61cm 오감도 이상 시제1호 13인의아해가도로로질주하오. (길은막달은골목이적당하오.) 제1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2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3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4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5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6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7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8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9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10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11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12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13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13인의아해는무서운아해와무서워하는아해와그렇게뿐이모였소. (다른사정은없는것이..
Sean Christopher Wyeth 1953 br. Barn, Late 20th c. Watercolor Works on Paper 11 1/2 x 19 1/2" 오미자술 황동규 오미자 한줌에 보해소주 30도를 빈 델몬트 병에 붓고 익기를 기다린다. 아, 차츰차츰 더 바알간 색, 예쁘다. 막소주 분자分子가 설악산 오미자 기개에 눌려 하나씩 분자 구조 바꾸는 광경. 매일 살짝 보며 더 익기를 기다린다. 내가 술 분자 하나가 되어 그냥 남을까 말까 주저하다가 부서지기로 마음먹는다. 가볍게 떫고 맑은 맛! 욕을 해야 할 친구 만나려다 전화 걸기 전에 내가 갑자기 환해진다. ※출처:《몰운대행》, 문학과지성사, 199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