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oong-Hyun Roh Snow, 2011-2013 oil on canvas Painting canvas 90.9×72.7cm 순은(純銀)이 빛나는 이 아침에 오탁번 눈을 밟으면 귀가 맑게 트인다. 나뭇가지마다 순은(純銀)의 손끝으로 빛나는 눈 내린 숲길에 멈추어 선 겨울 아침의 행인들. 원시림(原始林)이 매몰될 때 땅이 꺼지는 소리, 천 년 동안 땅에 묻혀 딴딴한 석탄(石炭)의 변모하는 소리, 캄캄한 시간 바깥에 숨어 있다가 발굴되어 건강한 탄부(炭夫)의 손으로 화차에 던져지는, 원시림(原始林) 아아 원시림(原始林) 그 아득한 세계(世界)의 운반(運搬) 소리, 이층방 스토브 안에서 꽃불 일구며 타던 딴..
Alex Katz Ace Airport, 1998 oil on canvas Painting canvas 60 by 114⅛ in 북관北關 백석 명태明太 창난젓에 고추무거리에 막칼질한 무이를 뷔벼 익힌 것을 이 투박한 북관北關을 한없이 끼밀고 있노라면 쓸쓸하니 무릎은 끊어진다 시큼한 배척한 퀴퀴한 이 내음새 속에 나는 가느슥히 여진女眞의 살냄새를 맡는다 얼근한 비릿한 구릿한 이 맛 속에선 까마득히 신라新羅백성의 향수鄕愁도 맛본다 ※출처:《백석 시전집》, 창작사, 1987. □ 정끝별 시인 감상 명태창난젓과 고추무거리(거친 고추찌꺼기)에 막칼질한 무를 비벼 익혔다니, 북관 음식 가자미식해와 '다대기'에 무를 비벼 익힌 듯하겠군요. 젓갈의 비리고 고..
Natasha Kissell Starry Sky, 2019 Oil on canvas Painting 80×100 cm. 새벽밥 김승희 새벽에 너무 어두워 밥솥을 열어봅니다 하얀 별들이 밥이 되어 으스러져라 껴안고 있습니다 별이 쌀이 될 때까지 쌀이 밥이 될 때까지 살아야 합니다. 그런 사랑이 무르익고 있습니다 ※출처:《냄비는 둥둥》, 창작과비평사, 2006. □ 정끝별 시인 감상 쌀과 밥이, 밥과 사랑이 이리 한통속이었군요. 시인은 말합니다. "쌀이 무엇인지 아니? 신의 이빨이란다." 인간이 배고파 헤맬 때 신이 이빨을 뽑아 빈 논에 던져 자란 게 쌀이라지요. 그렇다면, 고런 쌀로 밥을 지어 배불리 먹는 모습을 보며 흐뭇하게 웃고 있..
Maureen Gallace Bare Trees Winter, 1997 oil on canvas Painting 16 x 16 in. 눈 오는 집의 하루 김용택 아침밥 먹고 또 밥 먹는다 문 열고 마루에 나가 숟가락 들고 서서 눈 위에 눈이 오는 눈을 보다가 방에 들어와 또 밥 먹는다 ※출처:《그 여자네 집》, 창작과비평사, 1998. □ 정끝별 시인 감상 이 눈 위에 저 눈 오고, 헌 눈 위에 새 눈 옵니다. 저 밥 먹고 이 밥 먹고, 새 밥 먹고 식은 밥 먹습니다. 하! 심심해~. 아침 먹고 땡, 점심 먹고 땡, 창문을 열어보니 눈이 오더래. 온 세상에 흰 쌀가루 흰 튀밥이 흰 뻥튀기 눈사람이 굴러가네, 아이고 무서워 희디흰 세상! 아니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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