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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미자술 - 황동규」 오미자 한줌에 보해소주 30도를 빈 델몬트 병에 붓고 익기를 기다린다. 아, 차츰차츰 더 바알간 색, 예쁘다. 막소주 분자分子가 설악산 오미자 기개에 눌려 하나씩 분자 구조 바꾸는 광경.
나는나무 2024. 12. 23. 16:29
Sean Christopher Wyeth
1953 br.
Barn, Late 20th c.
Watercolor
Works on Paper
11 1/2 x 19 1/2"
오미자술
황동규
오미자 한줌에 보해소주 30도를 빈 델몬트 병에 붓고
익기를 기다린다.
아, 차츰차츰 더 바알간 색,
예쁘다.
막소주 분자分子가
설악산 오미자 기개에 눌려
하나씩 분자 구조 바꾸는 광경.
매일 살짝 보며 더 익기를 기다린다.
내가 술 분자 하나가 되어
그냥 남을까 말까 주저하다가
부서지기로 마음먹는다.
가볍게 떫고 맑은 맛!
욕을 해야 할 친구 만나려다
전화 걸기 전에
내가 갑자기 환해진다.
※출처:《몰운대행》, 문학과지성사, 1991.
□ 정끝별 시인 감상
오미자, 어여뿐 누이의 복사빛 볼이 떠오르는 이름.
명자나무 하면 떠오르는 바알간 꽃빛 같은.
보해소주 30도 분자들을 물들인 오미자술.
그 한 잔의 사랑, 한 잔의 용서, 한 잔의 기쁨, 그리고 한 잔의 비애, 한 잔의 고통, 한 잔의 분노· · · · · ·.
인생의 몰약이자 마약, 명약이자 독약!
저리 불타오르는 물, 폭발하는 물!
"입과 항문 사이클 온통 황홀케 하는 술, 계속 익을까?"
※출처:《정끝별의 밥시이야기, 밥》, 마음의숲, 2007.
□ 황동규 시인
1938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영문과와 같은 과 대학원을 졸업했고, 영국 에든버러 대학 등에서 수학했다.
1958년 『현대문학』 추천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이래 『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진다』『어떤 개인 날』 『풍장』『악어를 조심하라고?』 『외계인』 『버클리풍의 사랑 노래』 『우연에 기댈 때도 있었다』 『꽃의 고요』 『겨울밤 0시 5분』 『사는 기쁨』 『연옥의 봄』 『오늘 하루만이라도』 등의 시집을 펴냈다.
현대문학상 · 이산문학상 · 대산문학상 · 미당문학상 · 호암예술상 등을 수상하였다.
※출처: 알라딘 작가파일, 황동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