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ice Neel American, 1900 - 1984 Jackie Curtis as a Boy oil on canvas Painting canvas 44 by 30 in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 김수영 왜 나는 조그만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왕궁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 50원짜리 갈비가 기름 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 같은 주인 년한테 욕을 하고 옹졸하게 욕을 하고 한번 정정당당하게 붙잡혀 간 소설가를 위해서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월남 파병과 반대하는 자유를 이행하지 못하고 20원을 받으러 세 번째 네 번째 찾아오는 야경꾼들만 증오하고 있는가 옹졸한 나의 전통은 유구하고 이제 내..
Basia Roszak Scottish THE FIDDLEoil on canvasPainting 100cm x 76cm 밥 먹는 법 정호승 밥상 앞에 무릎을 꿇지 말 것 눈물로 만든 밥보다 모래로 만든 밥을 먼저 먹을 것 무엇보다도 전시된 밥은 먹지 말 것 먹더라도 혼자 먹을 것 아니면 차라리 굶을 것 굶어서 가벼워질 것 때때로 바람 부는 날이면 풀잎을 햇살에 비벼 먹을 것 그래도 배가 고프면 입을 없앨 것 ※출처:《사랑하다 죽어버려라》, 창작과비평사, 1997. □ 정끝별 시인 감상 왼손잡이는 말합니다. 밥 먹는 손이 왼손이면 안되나요? 환경운동가는 힘주어 말합니다. 밥 먹는 법은 잘 알아도, 먹다 남긴 음식이..
Itzchak Tarkay Israeli, 1935-2012 What Might Have Been Color serigraphPrints & Graphic Art 21 ¾" x 19" 이름 없는 여인(女人)이 되어 노천명 어느 조그만 산골로 들어가 나는 이름 없는 여인이 되고 싶소 초가지붕에 박넝쿨 올리고 삼밭엔 오리랑 호박을 놓고 들장미로 울타리를 엮어 마당엔 하늘을 욕심껏 들여 놓고 밤이면 실컷 별을 안고 부엉이가 우는 밤도 내사 외롭지 않겠소 기차가 지나가버리는 마을 놋양푼의 수수엿을 녹여 먹으며 내 좋은 사람과 밤이 늦도록 여우 나는 산골 얘기를 하면 삽살개는 달을 짓고 나는 여왕보다 더 행복하겠소..
Alicja Kappa Polish, 1973 Southern Relax, 2022 Acrylic, Oil, Canvas, Metal Painting 100 cm x 100 cm 긍정적인 밥 함민복 시詩 한 편에 삼만 원이면 너무 박하다 싶다가도 쌀이 두 말인데 생각하면 금방 마음이 따뜻한 밥이 되네 시집 한 권에 삼천 원이면 든 공에 비해 헐하다 싶다가도 국밥이 한 그릇인데 내 시집이 국밥 한 그릇만큼 사람들 가슴을 따뜻하게 덥혀줄 수 있을까 생각하면 아직 멀기만 하네 시집이 한 권 팔리면 내게 삼백 원이 돌아온다 박리다 싶다가도 굵은 소금이 한 됫박인데 생각하면 푸른 바다처럼 상할 마음 하나 없네 ※출처:《모..
John Cunningham Scottish, 1926 - 1998 STILL LIFE OF FRUIT AND FLOWERS oil on canvas Painting 81.5cm x 71cm 떡 찌는 시간 고두현 식구들 숫자만큼 모락모락 흰 쌀가루가 익는 동안 둥그런 시루 따라 밤새 술래잡기하다 시룻번 떼어 먹으려고 서로 다투던 이웃집 아이들이 함께 살았다네 오래도록 이곳에. *시룻번: 떡을 찔 때 시루와 솥 사이에 김이 새지 않도록 바르는 반죽 ※출처:《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 랜덤하우스코리아, 2005. □ 정끝별 시인 감상 시루 구멍을 얇게 썬 무로 막습니다. 팥고물 한 대접을 넣고 고른 후..
Alexander Goudie Scottish, 1933 - 2004 Eater Table oil on canvas Painting 32.75" high x 43" wide 밥 천양희 외루워서 밥을 많이 먹는다던 너에게 권태로워 잠을 많이 잔다던 너에게 슬퍼서 많이 운다던 너에게 나는 쓴다. 궁지에 몰린 마음을 밥처럼 씹어라. 어차피 삶은 너가 소화해야 할 것이니까. ※출처:《그리움은 돌아갈 자리가 없다》, 작가정신, 1998. 그리움은 돌아갈 자리가 없다-저자천양희출판작가정신출판일1998.07.07 □ 정끝별 시인 감상 외로워서 먹는 밥은 아무리 많이 먹어도 돌아서면 도로 허기집니다. 권태로워서 자는 잠은 아무리 많이 자도 잠이 잠을..
Josef Costazza Austrian, 1950 NOTTE INVERNALE Oil painting on canvas Painting 100 x 80 cm 저녁눈 박용래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 말집 호롱불 밑에 붐비다.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 조랑말 발굽 밑에 붐비다.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 여물 써는 소리에 붐비다.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 변두리 빈터만 다니며 붐비다. *1966년 [월간문학]에 발표된 시 □ 김재홍 문학평론가 감상 눈물의 시인 박용래(朴龍來)를 기억하시는지요. 요즘같이 거칠고 소란한 세상에는 도무지 어울림 수 없는 사람이지만요. 그렇기에 더욱 그립고 소중하게 생각되는 시인이랍니다. 그야말로 토종 한..
Andrew Baines Australian, 1963 "Post Modern Backyard 4" Acrylic on Canvas Painting 75x80cm 매생이 정일근 다시 장가든다면 목포와 해남 사이쯤 매생이국 끓일 줄 아는 어머니를 둔 매생이처럼 달고 향기로운 여자와 살고 싶다. 뻘바다에서 매생이 따는 한겨울이 오면 장모의 백년손님으로 당당하게 찾아가 아침저녁 밥상에 오르는 매생이국을 먹으며 눈 나라는 겨울밤 뜨끈뜨끈하게 보내고 싶다. 파래 위에 김 잡히고 김 위에 매생이 잡히니 매생이를 먹고 자란 나의 아내는 명주실처럼 부드러운 여자일거니, 우리는 명주실이 파뿌리가 될 때까지 해로할 것이다. 남쪽에서 매생이국을 먹어본 사람은 안다 차가..
German, 1957 Ohne Titel 3, 2007 colour woodcuts Prints & Graphic ArtEach 76x56,5 cm 육봉달 성미정 장장 한 달 째 머릿속에서 육봉달이 손에 북경오리를 들고 뛰어다닌다 한때 나도 북경오리를 먹고 싶어했다 하얀 밀쌈에 바삭한 오리 껍질을 얹고 파채를 올려 까만 춘장을 살짝 발라 먹고 싶었다 TV 중국 여행에서 본 그대로 북경오리는 관념의 접시 위에 가지런히 놓여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육봉달이 나와 북경오리를 맨손으로 때려잡았다고 했을 때 난 북경오리로 뒤통수를 세게 맞은 느낌이었다 저 녀석이 나보다 먼저 북경오리를 때려잡다니 그것도 맨손으로· · · · · · 하긴 그것도..
David Hockney British, 1937 David Hockney, 2020 offset lithograph Prints & Graphic Art 26 x 38 cm 밥을 먹으며 장석남 밥을 먹을 때 나는 자주 밥 냄새 끝까지 달아나 있다 밥의 기억 모두 낙엽져 앙상한 마을, 내려와 넓은 숨을 쉬는 하늘가에서 이름 버리고 빈 그릇을 달그락거리기도 한다 어느 미래에 나는 배고프지 않은 기억 밑으로 수저를 던질 것인가 내 영혼의 싱싱한 지느러미 속에 차고 단단한 잔별들이 뜰 때 나는 조용히 수저를 놓고 그들과 함께 몸 비틀며 반짝일 것이다 밥을 먹을 때 나는 자주 기억도 끝나는 곳을 病처럼 다녀오곤 한다 ※출처:《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