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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 찌는 시간 - 고두현」, 식구들 숫자만큼 모락모락 흰 쌀가루가 익는 동안 둥그런 시루 따라 밤새 술래잡기하다 시룻번 떼어 먹으려고 서로 다투던 이웃집 아이들이 함께 살았다네 오래도록 이곳에.
나는나무 2024. 12. 27. 15:57
John Cunningham
Scottish, 1926 - 1998
STILL LIFE OF FRUIT AND FLOWERS
oil on canvas Painting
81.5cm x 71cm
떡 찌는 시간
고두현
식구들
숫자만큼
모락모락
흰 쌀가루가 익는 동안
둥그런 시루 따라
밤새 술래잡기하다
시룻번 떼어 먹으려고
서로 다투던
이웃집 아이들이
함께 살았다네
오래도록
이곳에.
*시룻번: 떡을 찔 때 시루와 솥 사이에 김이 새지 않도록 바르는 반죽
※출처:《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 랜덤하우스코리아, 2005.
□ 정끝별 시인 감상
시루 구멍을 얇게 썬 무로 막습니다.
팥고물 한 대접을 넣고 고른 후, 쌀가루 두 대접을 넣고 고릅니다.
그렇게 켜켜이 고르고 고릅니다.
쌀가루 켜는 홀수여야 합니다.
김이 새지 않도록 밀가루를 개어 만든 시룻번으로 솥과 시루의 틈새를 둘러가며 붙입니다.
구수하면서도 달디단 떡 찌는 냄새가 뭉게뭉게 피어나는 내내 떡시루 근처를 희희낙락했었지요.
쌀가루는 흰 살(肉)이, 팥고물은 붉은 피가 된다고 이르셨습니다.
마흔 해를 거듭해 또 어디선가 생일 떡시루가 익고 있을 오늘도 안달복달했습니다!
※출처:《정끝별의 밥시이야기, 밥》, 마음의숲, 2007.
□ 고두현 시인
시인·한국경제신문 문화에디터
고두현은 199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으로 등단했다.
한국경제신문 문화부 기자와 문화부장, 논설위원을 거쳐 문화에디터로 일하고 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 교과서에 시와 산문이 수록돼 있다.
『시 읽는 CEO』와 『옛 시 읽는 CEO』를 통해 시와 경영을 접목하면서 독서경영 열풍을 불러일으켰고,
시에 담긴 인생의 지혜와 일상의 소중함을 전하는 일에 열정을 기울이고 있다.
지은 책으로 『마음필사』와 『사랑필사』를 비롯해 시집 『늦게 온 소포』, 『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 『달의 뒷면을 보다』, 『오래된 길이 돌아서서 나를 바라볼 때』,
시에세이집 『리더의 시 리더의 격』, 『시를 놓고 살았다 사랑을 놓고 살았다』, 독서경영서 『나무 심는 CEO』, 『미래 10년 독서』(전2권) 등이 있다. 동서양 시인들의 아포리즘을 담은 『시인, 시를 말하다』를 엮었다.
김달진문학상, 유심작품상, 김만중문학상 유배문학특별상 등을 받았다.
※출처: 알라딘 작가파일, 고두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