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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생이 - 정일근」, 다시 장가든다면 목포와 해남 사이쯤 매생이국 끓일 줄 아는 어머니를 둔 매생이처럼 달고 향기로운 여자와 살고 싶다. 뻘바다에서 매생이 따는 한겨울이 오면 장모의 백년손님으로 당당하게 찾아가
나는나무 2024. 12. 26. 21:14
Andrew Baines
Australian, 1963
"Post Modern Backyard 4"
Acrylic on Canvas Painting
75x80cm
매생이
정일근
다시 장가든다면 목포와 해남 사이쯤
매생이국 끓일 줄 아는 어머니를 둔
매생이처럼 달고 향기로운 여자와 살고 싶다.
뻘바다에서 매생이 따는 한겨울이 오면
장모의 백년손님으로 당당하게 찾아가
아침저녁 밥상에 오르는 매생이국을 먹으며
눈 나라는 겨울밤 뜨끈뜨끈하게 보내고 싶다.
파래 위에 김 잡히고 김 위에 매생이 잡히니
매생이를 먹고 자란 나의 아내는
명주실처럼 부드러운 여자일거니, 우리는
명주실이 파뿌리가 될 때까지 해로할 것이다.
남쪽에서 매생이국을 먹어본 사람은 안다
차가운 표정 속에 감추어진 뜨거운 진실과
그 진실 훌훌 소리내어 마시다 보면
영혼과 육체가 함께 뜨거워지는 것을.
아, 나의 아내도 그러할 것이다.
뜨거워지면 엉켜 떨어지지 않는 매생이처럼
우리는 한몸이 되어 사랑할 것이다.
※출처:《시안》, 2003년 봄호.
□ 정끝별 시인 감상
생굴이랑 폭폭 끓인 후 참기름 한 방울 떨어뜨린, 초록 명주실처럼 치렁치렁 밀려오는 천길 바닷속 맛.
김이 나지 않아 산山사람 매생이국에 데고 바닷사람 토란국에 덴다는, 해서 미운 사위에게 덥석 준다는, 겨울 한 철의 뜨끈한 매생이국 한 그릇!
매생이 같은 여자를 꿈꾸는 저 남자, 행여나 미운 사위는 아니겠지요?
※출처:《정끝별의 밥시이야기, 밥》, 마음의숲, 2007.
□ 정일근 시인
경남 진해 출생.
1984년 『실천문학』과 198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바다가 보이는 교실』, 『유배지에서 보내는 정약용의 편지』, 『그리운 곳으로 돌아보라』, 『처용의 도시』, 『경주 남산』, 『누구도 마침표를 찍지 못한다』, 『마당으로 출근하는 시인』, 『오른손잡이의 슬픔』, 『착하게 낡은 것의 영혼』, 『기다린다는 것에 대하여』 등 발간.
시와시학젊은시인상, 소월시문학상, 영랑시문학상, 지훈문학상, 이육사시문학상 등 수상.
경남대학교 교수, 청년작가아카데미 원장.
※출처: 교보문고 작가파일, 정일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