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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봉달 - 성미정」, 장장 한 달 째 머릿속에서 육봉달이 손에 북경오리를 들고 뛰어다닌다 한때 나도 북경오리를 먹고 싶어했다 하얀 밀쌈에 바삭한 오리 껍질을 얹고 파채를
나는나무 2024. 12. 26. 19:00
German, 1957
Ohne Titel 3, 2007
colour woodcuts
Prints & Graphic ArtEach
76x56,5 cm
육봉달
성미정
장장 한 달 째 머릿속에서 육봉달이 손에
북경오리를 들고 뛰어다닌다 한때 나도
북경오리를 먹고 싶어했다 하얀
밀쌈에 바삭한 오리 껍질을 얹고 파채를
올려 까만 춘장을 살짝 발라 먹고
싶었다 TV 중국 여행에서 본 그대로
북경오리는 관념의 접시 위에 가지런히
놓여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육봉달이 나와
북경오리를 맨손으로 때려잡았다고 했을
때 난 북경오리로 뒤통수를 세게 맞은
느낌이었다 저 녀석이 나보다 먼저 북경오리를
때려잡다니 그것도 맨손으로· · · · · · 하긴
그것도 북경오리를 먹는 한 방법일 수 있는데
아직도 내 머릿속에선 북경오리가 꿱꿱거리고
있는데 육봉달이는 맨손으로 북경오리를
때려잡고 달리는 마을버스 2-1을 타고 보란
듯이 여행을 떠나는구나
아! 나는 언제쯤이라야 맨손으로
북경오리를 때려잡고 창백한 관념의
접시를 박살내고 달리는 마을버스 2-1에
올라타 익숙한 풍경 속으로도
여행을 떠날 수 있을까
※출처:《상상 한 상자》, 랜덤하우스중앙, 2006.
□ 정끝별 시인 감상
"맨손으로 북경오리를 때려잡고, 떡볶이를 철근같이 씹어먹으며, 달리는 마을버스 2-1에서 뛰어내린" 육봉달을 기억하십니까?
검은 뿔테안경에 앞 대머리를 긴 옆머리로 살짝 덮어 가린, 몽골리안 순수 토종 육봉달이 TV 개그쇼에 뛰쳐나와 뜬금없는 비장함으로 읊어대던 대사였지요.
한데 육봉달이만 북경오리를 맨손으로 때려잡고 싶었겠습니까?
북경에서 "밀쌈에 바삭한 오리 껍질을 얹고 파채를/ 올려 까만 춘장을 살짝 발라 먹고 싶었"겠습니까?
조금이라도 더 오래 맛보려고 떡복이를 철근처럼 잘근잘근 오래 씹어먹었던 이가 비단 육봉달뿐이었겠습니까?
※출처:《정끝별의 밥시이야기, 밥》, 마음의숲, 2007.
□ 성미정 시인
강원도 정선에서 사남매의 둘째 딸로 태어났다.
툇마루에서 책 읽고 몽상하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동시를 쓰면서 글쓰기 인생이 시작됐다.
1994년 시인으로 태어나 그간 네 권의 시집과 한 권의 산문집을 출간했다.
시집 『대머리와의 사랑』 『사랑은 야채 같은 것』 『상상 한 상자』 『읽자마자 잊혀져버려도』, 산문집 『나는 팝업북에 탐닉한다』가 있다.
2002년 5월 어느 날 엄마로 태어났다.
현재는 시를 쓰며 책과 장난감을 파는 가게를 꾸려가며 재경이의 엄마로 살아가고 있다.
장래 희망은 몽상과 글쓰기를 계속하며 틈틈이 쿠키를 굽는 것.
※출처: 교보문고 작가파일, 성미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