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rew Baines Australian, 1963 "Post Modern Backyard 4" Acrylic on Canvas Painting 75x80cm 매생이 정일근 다시 장가든다면 목포와 해남 사이쯤 매생이국 끓일 줄 아는 어머니를 둔 매생이처럼 달고 향기로운 여자와 살고 싶다. 뻘바다에서 매생이 따는 한겨울이 오면 장모의 백년손님으로 당당하게 찾아가 아침저녁 밥상에 오르는 매생이국을 먹으며 눈 나라는 겨울밤 뜨끈뜨끈하게 보내고 싶다. 파래 위에 김 잡히고 김 위에 매생이 잡히니 매생이를 먹고 자란 나의 아내는 명주실처럼 부드러운 여자일거니, 우리는 명주실이 파뿌리가 될 때까지 해로할 것이다. 남쪽에서 매생이국을 먹어본 사람은 안다 차가..
German, 1957 Ohne Titel 3, 2007 colour woodcuts Prints & Graphic ArtEach 76x56,5 cm 육봉달 성미정 장장 한 달 째 머릿속에서 육봉달이 손에 북경오리를 들고 뛰어다닌다 한때 나도 북경오리를 먹고 싶어했다 하얀 밀쌈에 바삭한 오리 껍질을 얹고 파채를 올려 까만 춘장을 살짝 발라 먹고 싶었다 TV 중국 여행에서 본 그대로 북경오리는 관념의 접시 위에 가지런히 놓여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육봉달이 나와 북경오리를 맨손으로 때려잡았다고 했을 때 난 북경오리로 뒤통수를 세게 맞은 느낌이었다 저 녀석이 나보다 먼저 북경오리를 때려잡다니 그것도 맨손으로· · · · · · 하긴 그것도..
David Hockney British, 1937 David Hockney, 2020 offset lithograph Prints & Graphic Art 26 x 38 cm 밥을 먹으며 장석남 밥을 먹을 때 나는 자주 밥 냄새 끝까지 달아나 있다 밥의 기억 모두 낙엽져 앙상한 마을, 내려와 넓은 숨을 쉬는 하늘가에서 이름 버리고 빈 그릇을 달그락거리기도 한다 어느 미래에 나는 배고프지 않은 기억 밑으로 수저를 던질 것인가 내 영혼의 싱싱한 지느러미 속에 차고 단단한 잔별들이 뜰 때 나는 조용히 수저를 놓고 그들과 함께 몸 비틀며 반짝일 것이다 밥을 먹을 때 나는 자주 기억도 끝나는 곳을 病처럼 다녀오곤 한다 ※출처:《새..
Chiu Ya-Tsai Taiwanese, 1949 - 2013 Wen-Chi, 1995 Oil on Canvas Painting 130 x 97 cm 엄마 김종삼 아침엔 라면을 맛있게 먹었지 엄만 장사를 잘할 줄 모르는 행상이란다 너희들 오늘도 나와 있구나 저물어 가는 산허리에 내일은 꼭 하나님의 은혜로 엄마의 지혜로 먹을거랑 입을거랑 가지고 오마 엄만 죽지 않는 계단 ※출처:《김종삼 전집》, 청하, 1990. □ 정끝별 시인 감상 날품팔이 행상하는 엄마들 많았습니다. 상이군이 주정뱅이 아버지들도 많았습니다. 파출부하고 장사하는 엄마들, 실업과 노숙의 아버지들 지금도 많습니다. 산허리에 걸린 초저녁달과 함께 돌아온 엄마의 보자기..
Gerald Norden British, 1912 - 2000 Still life with Bread, dated '88 oil on board Painting 28x38cm 말 조원규 새벽 다섯시 나무의자에 앉아 둥근 빵을 먹는다 소리없는 칼을 넣어 한 조각 잘라낸 먼 해안처럼 둥글고 사원처럼 적막한 살로부터 환한 무엇 허기 속으로 떨어진다 붉은 새의 그림자처럼 빠른 무언가가 슬픔도 기쁨도 잊고 우투커니 앉은 내 속으로 떨어진다 사라지는가 죽음? 응, 사라진다 그것 남은 빵을 바라본다 ※출처:《밤의 바다를 건너》, 문학동네, 2006. □ 정끝별 시인 감상 새벽 다섯시 나무의자에 앉아 둥근 빵을 먹는 사람. 소리 없는 칼을 넣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