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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 피오트로비악 
Anna Piotrowiak 
Polish, 1983

Symfonia Nocy  
2018 

acrylic on canvas 
Painting 
100 x 50 cm 

 

 

 

 

가난의 골목에서는  

 

                        박재삼  

 

 

    골목골목이 바다를 향해 머리칼 같은 달빛을 벗어내고 있었다. 아니, 달이 바로 얼기빗이었다. 흥부의 사립문을 통하여서 골목을 빠져서 꿈꾸는 숨결들이 바다로 간다. 그 정도로 알거라. 

 

    사람이 죽으면 물이 되고 안개가 되고 비가 되고 바다에 가는 것이 아닌 것가. 우리의 골목 속의 사는 일 중에는 눈물 흘리는 일이 그야말로 많고도 옳은 일쯤 되리라. 그 눈물 흘리는 일을 저승같이 잊어버린 한밤중, 참말로 참말로 우리의 가난한 숨소리는 달이 하는 빗질에 빗겨져, 눈물 고인 한 바다의 반짝임이다. 

 

 

 

 

 

※출처:《천년의 바람》, 민음사, 1995. 

 

 


 

□  황인숙 시인 감상 

 

"골목골목이 바다를 향해 머리칼 같은 달빛을 빗어내고 있었다. 아니, 달이 바로 얼기빗이었었다. 흥부의 사립문을 통하여서 골목을 빠져서 꿈꾸는 숨결들이 바다로 간다." 

 

입술을 달싹이며 절로 한 번 더 읽어보게 되는 시다. 아, 얼마나 흥건한 아름다움인가· · · · ·. 

 

"흥부의 사립문"이 일러주듯이 가난한, 바닷가 그 말을에 사는 사람들은 삶의 터전이 바다이니 골목골목이 바다를 향해 나 있을 테지. 삶의 터전이기도 한 그 바다는, "사람이 죽으면 물이 되고 안개가 되고 비가 되고 바다에나 가는 것이 아닌 것가", 우리 넋이 결국엔 가는 곳이기도 하다. 즉 죽음의 터전이기도 하다. 

 

그래, "눈물 흘리는 일을 저승같이 잊어버린 한밤중", 고된 하루를 마치고 단잠에 빠져든 이들의 "꿈꾸는 숨결들이 바다로 간다" · · · ·.  미묘하고 심오해서 독자의 마음은 아스라이 헤맨다. 

 

"우리의 골목 속의 사는 일 중에는 눈물 흘리는 일이 그야말로 많고도 옳은 일쯤 되리라." 

 

죽으면 육신은 결국 흙이 되고 안개가 되고, 물질의 형태만 그렇게 변할 뿐이고 넋이라든가 혼이라든가는 바다 같은 것으로 일렁이고 반짝이게 될 텐데, 그렇게 생각하면 삶이라는 게 별게 아닌데, 이 삶을 살아내기가 그토록 힘들구나! 해방촌에 있는 독일식 빵집 '더 베이커스테이블' 벽에 이런 말이 적혀 있다. 

 

"빵만 있으면 어지간한 슬픔을 견딜수 있다." 우리 삶에는 눈물, 즉 슬픔이 많은데 그 슬픔의 이유는 주로 가난이다. 휴 · · · · 가난! 

 

그런데 눈물 흘리는 일이 많다는 건 금방 수긍이 가는데, 그게 "옳은 일"이라니 무슨 뜻일까? 문슨 뜻일까! 무슨 뜻일까 · · · · 마땅하다 · · · · 그러니, 운명이다? 운명이라면 정면에서 맞아라, 맞서라, 뒤통수 맞지 말아라 · · · · 팔자에 복무해라 · · · ·. 어쨋거나, 가난한 어촌의 밤풍경을 얼레빗 같은 달빛으로 하염없이 빗어 내리는 참으로, 참으로 아름다운 시! 

 

'얼기빗'은 '얼레빗'이다. 국어사전을 찾아보니, '빗살이 굵고 성긴 큰 빗'인 얼레빗의 다른 이름은 월소(月梳)다. 월소라니! 옛사람들의 작명 센스나 박재삼 선생님의 시 감각이나 어찌 이리도 절묘한가! 내친 김에, '빗살이 아주 촘촘한 대빗'은 참빗이라고 하는데, 참빗의 다른 이름은 진소(眞梳), 진(眞) 대 월(月)이라 · · · · · ·. 진은 지구, 이 땅, 현실일 테고, 월은 달, 저 곳, 꿈? 국어사전은 참으로 내게 세계를 보는 창이어라! 

※출처:《하루의 시》, 책읽는수요일, 2016. 

 


 

□  박재삼(1933~1997) 시인 

 

 

 

1933년 4월10일 일본 도쿄에서 막노동을 하던 아버지 박찬홍(朴贊洪)과 어머니 김어지(金於之) 사이의 둘째 아들로 태어난다. 

3년 뒤 귀국한 그의 가족은 어머니의 고향인 경남 삼천포에 자라를 잡는다. 삼천포에서 살 때 그의 아버지는 막일을 나가고 그의 어머니는 두부나 생선을 떼어다가 파는 도붓장수를 하며 생계를 유지해 간다. 

1946년 선생은 가난 때문에 중학교 진학을 제때 못하고 삼천포여자중학교의 사환으로 들어간다. 

그는 이때 마침 삼천포여중의 교사로 있던 시조 시인 김상목과 만나게 되는데 이것이 그를 시의 세계로 이끄는 운명적 계기가 된다. 선생은 이듬해 해삼천포중학교 병설 야간부에 수석으로 입학한다.  

2년 뒤 주간 중학교로 옮긴 그는 제1회 영남예술제(개천 예술제) ‘한글 시 백일장’ 에서 ‘촉석루’로 차상을 받는다. 이 때부터 그는 같은 백일장에서 장원을 차지한 이형기와 친분을 맺고 교류를 쌓게 된다. 

4년제 중학과정을 마치고 1951년 삼천포고등학교 2학년에 편입한 그는 1953년 같은 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한다. 같은 해 그의 시조 ‘강 물에서’가 모윤숙의 추천으로 ‘문예’ 문학지 11월호에 발표된다. 

선생은 곧 김상묵의 소개로 잡지창간을 준비하고 있던 ‘현대문학사’에 취직을 하게 된다. 그는 ‘현대문학사’에 다니게 되면서 시 쓰는 일에 더욱 열정을 쏟는다. 그의 시는 날로 기량과 빛을 발해 1955년 서정주의 추천으로 ‘현대문학에’에 ‘섭리’, ‘정적’ 등이 실린다. 

이로써 정식으로 문단에 나온 시인은 1956년 ‘춘향이 마음’을 발표하고 1957년 ‘현대문학 신인상’을 받기에 이른다. 그야말로 학창시절부터 수재적인 면모를 드러내면서 주목을 한 몸에 얻으며 각광을 받는다. 

1961년도엔 구자운, 박성룡, 박희진, 성찬경 등과 ‘60년대 시화집’에 참여한 선생은 이듬해인 1962년 ‘신구문화사’에서 첫 시집 ‘춘향이 마음’ 을 펴낸다. 

이 시집에 수록된 노래 가운데 하나인 ‘울음이 타는 가을 강’은 3연 12행의 자유시 형식을 취하고 있으며 친구의 서러운 사랑 이야기를 토속적인 민속주의 정서에 녹여 매우 유려하게 보여준다. 

※출처: 뉴스봄 20200506 기사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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