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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안나 미스탈 
Joanna Misztal  
Polish, 1967 

Iris 
2024 

Acrylic, Oil, Canvas, Metal 
Painting 
70 cm x 70 cm 

 

 

 

 

 

기쁨  

 

                 나태주  

 

 

난초 화분의 휘어진 

이파리 하나가 

허공에 몸을 기댄다 

 

허공도 따라서 휘어지면서 

난초 이파리를 살그머니 

보듬어 안는다 

 

그들 사이에 사람인 내가 모르는 

잔잔한 기쁨의 

강물이 흐른다 

 

 

 

 

 

 

 

※출처:《풀잎 속 작은 길》, 1996. 

 

 

 


 

 

□  김재홍 문학평론가 감상 

 

참 이렇게 좋은 기쁨의 시가 공주 공산성 너머 저 멀리 대숲 일렁이는 나태주 시인의 막동리 초가집에 숨어 있었군요. 

 

난초 잎이 곡선으로 휘어져 허공에 기댄다니요? 허공이 어디 의지할 만한 구체적 사물인가요? 아니 자기 자신 제대로 어디 자리잡고 있기나 한 것입니까? 아무것도 없어 보이는 허공에 기댄다니 참으로 난초가, 시인이 외로운가 봅니다. 실제로 허공이란 빈 터, 아무것도 없는 빈 공간을 말하는 것 아닌가요? 마치 원래 우리네 인생이, 삶이 그렇게 허무하단 말입니다. 

 

그런데 참 이상하군요. 아무것도 없는, 텅 빈 허공이 "따라서 휘어지면서 / 난초 이파리를 살그머니 / 보듬어 안는다"고 하는군요. 허공은 아무것도 없는 빈 공간이 아니라 원래부터 난초를 거기 있을 수 있게 만들어 준 고마운 분이셨나 봅니다. 아무자리도 차지하지 않고 거기 그렇게 있으면서도 또 스스로를 비움으로써 다른 이를 존재할 수 있게 하는 보이지 않는 성자의 모습으로 말입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그 허공이 사느라 고달프고 외로운 난초잎을 살그머니 보듬어 안아 주는 것이군요. 아마, 허공도 난초 이상으로 더 외롭고 허전하긴 마찬가지였나 봅니다. 

 

아, 그러고 보니 이 시는 사람과 사람, 존재와 존재를 연결해주는 근원적인 힘으로서의 사랑, 즉 외로움과 그리움 그리고 기다림을 노래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어려운 말로 하면 존재와 무(無)의 변증법이라고 볼러볼 수도 있겠지요. 존재는 허무에 기대고 허무는 존재를 의지하며 산다는  뜻이지요. 제가 그대에게, 그대가 나에게 기대고 사는 것처럼 말입니다. 

 

한 술 더 떠서 이 시는 마지막 연에서 볼 수 있듯이 '모든 생명은, 존재는 다른 생명 - 존재와 평등하다' 라고 하는 명제를 일러 주는 듯도 싶습니다. 만물의 영장이니 뭐니 하며 교만하고 잘난 척하는 인간들이 어찌 세상의 오묘한 이치를 다 알 것이며, 과학적인 발명 발견이 세상이 운행되는 섭리를 다 꿰뚫을 수 있을 건가요? 

 

그렇습니다! "그들 사이에 사람인 내가 모르는 / 잔잔한 기쁨의 / 강물이" 소리 없이 흐르고 있는 것입니다. 난초와 허공 사이에 생명 존중과 사랑의 철학이 우주의 숨결처럼 보이지 않는 우주 에너지로 흘러가고 있는 것입니다. 

 

아마도 그래서 시인의 다른 이름이 철학자이자 명상가이고, 하느님 다음가는 창조자이자 때로는 혁명가가 될 수 있나 봅니다. 

※출처:《작은 들꽃이 보고 싶을 때》 

문학수첩, 2003. 

 

 


□  나태주 시인 

 

 

 

1945년 충청남도 서천군 시초면 초현리 111번지 그의 외가에서 출생하여 공주사범학교와 충남대학교 교육대학원을 졸업하고 오랫동안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했다. 2007년 공주 장기 초등학교 교장을 끝으로 43년간의 교직 생활을 마친 뒤, 공주문화원장을 거쳐 현재는 공주풀꽃문학관을 운영하고 있다.

 

1971년 [서울신문(현, 대한매일)] 신춘문예 시 「대숲 아래서」가 당선되어 문단에 데뷔, 등단 이후 끊임없는 왕성한 창작 활동으로 수천 편에 이르는 시 작품을 발표해왔으며, 쉽고 간결한 시어로 소박하고 따뜻한 자연의 감성을 담아 많은 독자의 사랑을 받아왔다.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시로 「풀꽃」이 선정될 만큼 사랑받는 대표적인 국민 시인이다. 흙의문학상, 충남문화상, 현대불교문학상, 박용래문학상, 시와시학상, 향토문학상, 편운문학상, 황조근정훈장, 한국시인협회상, 정지용문학상, 공초문학상, 유심작품상, 김삿갓문학상 등 많은 상을 수상하였다. 

1973년에는 첫 시집 『대숲 아래서』 펴냈고, 이후 1981년 산문집 『대숲에 어리는 별빛』, 1988년 선시집 『빈손의 노래』, 1999년 시화집 『사랑하는 마음 내게 있어도』, 2001년 이성선, 송수권과의 3인 시집 『별 아래 잠든 시인』, 2004년 동화집 『외톨이』, 2006년 『나태주 시선집』, 『울지 마라 아내여』, 『지상에서의 며칠』를 비롯하여 『누님의 가을』, 『막동리 소묘』, 『산촌엽서』, 『눈부신 속살』, 『그 길에 네가 먼저 있었다』, 『아직도 너를 사랑해서 슬프다』, 『마음이 살짝 기운다』, 『어리신 어머니』, 『풀꽃과 놀다』, 『혼자서도 꽃인 너에게』, 『좋다고 하니까 나도 좋다』 등 다양한 분야의 많은 문학작품을 출간하였다. 

1972년 「새여울시동인회」 동인, 1995년엔 「금강시마을」 회원, 1993년부터 1994년까지 충남문인협회 회장, 2002년부터 2003년까지 공주문인협회 회장, 2001년부터 2002년까지 공주녹색연합 대표 등을 역임하였으며, 공주문화원 원장, 계간 「불교문예」 편집주간, 격월간 시잡지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 공동주간, 지역문학인회 공동좌장, 한국시인협회 심의위원장(부회장)을 지냈다. 


주로 집에서 글을 쓰고 초청해 주는 곳이 있으면 찾아가 문학 강연을 하고 있다. 청소년기의 꿈은 첫째가 시인이 되는 것, 둘째가 예쁜 여자와 결혼해서 사는 것, 셋째가 공주에서 사는 것이었는데 오늘에 이르러 그 꿈을 모두 이루었다고 말하는 사람이다. 지금은 공주에서 살면서 공주풀꽃문학관을 건립, 운영하고 있으며 풀꽃문학상과 해외풀꽃문학상을 제정해 시행하고 있고,

 

현재 공주문화원장과 충남문화원연합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풀꽃문학관에서, 서점에서, 도서관에서, 전국 방방곡곡 사람들을 만나러 다니는 게 요즘의 일상이다. 가깝고 조그마한, 손 뻗으면 충분히 닿을 수 있는 시인으로 기억되고 싶다. 

※출처: 예스24 작가파일, 나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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