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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강 - 박경희」, 낼모레면 칠십 넘어 벼랑길인디 무슨 운전면허여 읍내 가는디 허가증이 필요헌가 당최 하지 말어 저승 코앞에 두고 빨리 가고 싶은감? 어째 할멈은 다른 할매들 안 하는 짓을 하고 그랴
나는나무 2024. 9. 11. 08:09
안드레스 조른
Anders Zorn
Swedish, 1860-1920
Göthilda Fürstenberg
1898
상강(霜降)
박경희
낼모레면 칠십 넘어 벼랑길인디
무슨 운전면허여 읍내 가는디 허가증이 필요헌가
당최 하지 말어 저승 코앞에 두고 빨리 가고 싶은감?
어째 할멈은 다른 할매들 안 하는 짓을 하고 그랴
워디 읍내에 서방 둔 것도 아니고 왜 말년에
개 풀 뜯어 먹는 소리여
오 개월 걸려 딴 운전면허증에
한 해 농사 품삯으로 산 중고차 끌고 읍내 나갔던 할매
후진하다 또랑에 빠진 차 붙들고
오매, 오매 소리에 초상 치르는 줄 알고 달려왔던 할배
그리 말 안 듣더니 일낼 줄 알았다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다가
풀린 다리 주저앉히고 다행이여, 다행이여
혼잣말에 까딱까딱 해 꺼진다
※출처:《벚꽃 문신》, 실천문학사, 2012.
□ 황인숙 시인 감상
상강은 24절기 중 하나로 한로(寒露)와 입동(立冬) 사이, 10월 24일경에 있다.
어···· 지금껏 입동의 한자가 入冬인 줄 알았는데 ···· 立冬이네요! (제 무식에 깜짝 놀라셨다면 죄송)
국화 떨어지고 서리 내린다는 상강, 인간의 나이로 치면 60에서 70사이. 풋풋하게 젊은이들, 인생의 청명(淸明)이나 곡우(穀雨)에 앉아 있는 이들은 상강의 애환, 된서리 내리는 그 슬픔과 아픔을 모르리. 농촌마을에서 벌어진 노익장 할머님의 에피소드를 재미나게 펼친 시에 제목을 '상강'이라 붙이니 깊이가 더해진다.
이 시가 실린 《벚꽃 문신》은 대개 우리 삶에서 아득히 먼 농경사회를 '살냄새' 나게 생생하고도 싱싱히, 푸근하게 보여준다. 단 한 편도 허술하지 않은, 보석상자 같은 시집!
농부의 딸이며 그 자신 '건달 농부'인 박경희는 내공이 두툼한 시인이다. 소재를 잡아채는 날렵함과 능청스럽고 '걸판지게' 이야기를 끌어가는 힘, 충청도 사투리로 들려주는 그 이야기 맛에 정신 팔린 독자가 자칫 간과할 수도 있을 세련된 기교! 간추리자면, 자연스럽고 건강한 야성과 세련된 지성을 겸비한 시인, 박경희!
악독하게 추운 날이다. 추위에 약한 사람들은 기온이 영하 10도 정도로 떨어지면 미친 듯이 졸립다. 겨울잠을 부르는 오늘 날씨, 박경희의 후끈한 시 한 편을 보너스로 소개하겠다. 《벚꽃 문신》은 배경이 농촌인 만큼 24절기를 제목으로 한 시가 여럿이다. 그중 「말복(末伏)」.
"계 모임에서 옻닭 먹고 온 엄니 밭머리에서 게트림 길게 하고 연거푸 이를 세 번 닦았다는데, 옻 안 타는 엄니 옻 잘 타는 아부지 앞에서는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었다고, 멀찌감치 떨어져 다니던 엄니가 뒷간 들어갔다 나온 뒤, 아부지 들어가고 똥김도 빠지지 않았는데 그 위에 쭈그려 앉았다고, 밤새 간지러움에 뒤척이다가, 자 어매 여 좀 봐봐 엉덩이 까 보여주자 거시기며 엉덩이가 벌겋게 오돌도돌 옻이 올랐다고, 니미 어떤 인간이 옻닭 처먹었느냐고 똥을 싸도 날 지나 싸지 왜 내 앞에 싸고 지랄이냐고, 옻 똥김 지대로 맞았다고 사흘 밤낮 벅벅 긁다가 세 들어 사는 집 구석구석 살폈다는데 수시로 빤스 속에 손 드나드는 통에 동네 아낙 여럿 낯 붉어졌다는데 한동안 대숲 뒷길로만 다녔다는데, 말도 못하고 쥐 죽은 듯 몸 사리며 가끔 아부지 빤스에 손 집어넣고 원하는 곳 시원하게 긁어줬다는 엄니".
※출처:《하루의 시》, 책읽는수요일, 2016.
□ 박경희 시인
2001년 『시안』 신인상에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벚꽃 문신』 『그늘을 걷어내던 사람』,
동시집 『도둑괭이 앞발 권법』,
산문집 『꽃 피는 것들은 죄다 년이여』 『쌀 씻어서 밥 짓거라 했더니』 『차라리 돈을 달랑께』 『충청도 마음사전』이 있다.
※출처: 알라딘 작가파일, 박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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