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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스 토마 

Hans Thoma 
German, 1839-1924 
 
Die Quelle (The Spring) 
1895 

 

 

 

 

 

사랑하는 까닭 

 

                       한용운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은 까닭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홍안(紅顔)만을 사랑하지마는 당신은 나의 백발(白髮)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내가 당신을 기루어하는 것은 까닭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미소만을 사랑하지마는 당신은 나의 눈물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내가 당신을 기다리는 것은 까닭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건강만을 사랑하지마는 당신은 나의 죽음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출처:《님의 침묵》, 초판1926. 

 
님의 침묵
책이 가장 낭만적이었던 시절의 문학을, 책이 가장 아름다웠던 시절의 스타일로 재탄생시켰다. 언제 어디서나 함께할 수 있는 작고 가벼운 문고판의 책 안에, 책이 낯선 사람도 쉽고 재밌게 읽을 수 있는 문학 작품을 엄선하여 담았다. 이음문고 국내 문학편의 일곱 번째 책 『님의 침묵』. 만해 한용운의 시는 젊은 사람에게는 사랑의 노래로, 종교인에게는 구원의 언어로, 민족주의자에게는 민족해방의 염원으로 읽힌다.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라며 나긋나긋하게 감정을 드러내는 여성적인 시어를 구사하면서도 조선의 독립을 염원하는 적극적인 저항 시인의 모습이 담겨있다. 일제의 감시가 심해지고 동료들이 변절하는 모습을 보면서도 따스한 인간미와 사랑을 잃지 않았던 로맨티시스트 한용운의 작품세계를 담았다.
저자
한용운
출판
이음문고
출판일
2022.05.04

 

 

 

 


 

 

□  김재홍 문학평론가 감상 

 

가끔씩 제자들의 주례를 설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처음에는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곤 했더랬습니다. 그러다가 고안해 낸 것이 있습니다. 이 시 한 편을 외워서 그럴듯하게 암송해 주고 약간의 살을 붙여 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런대로 멋도 있다 싶고, 또 제 심정도 웬만큼 반영할 수 있어 성공적이었던 겁니다. 

 

그렇습니다. 20여 년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라온 남녀 두 사람이 만나 결혼하는 데 상투적인 얘기를 하기보다는 이 시를 읊어 주는 게 무언가 새로운 느낌을 줄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지요. 사랑이란 젊은 시절 한때 하는 것이 아니지요. 홍안의 젊은 날 시작하여 백발이 되도록 한평생 애써 가꾸어 가는 정직한 농사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즐거운 일, 행복한 미소만을 사랑하는 게 아니라 슬픈 일, 절망까지도 뜨겁게 껴안는 일일 겁니다. 아울러 건강할 때만이 아니라 병들어 고통 받고 절망할 때 오히려 더 절실하고 깊어지는 것입니다. 이승을 넘어 넘어 저승까지도 함께 가는 영원한 것이라는 뜻입니다. 

 

사랑은 그만큼 진실하고, 정직하고, 치열하며, 일관성 있어야 하고 영원에 호소해야 한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고 하겠습니다. 말하자면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가치덕목으로서 진정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제가 한용운을 존경하는 것도 바로 이런 까닭입니다. 혁혁한 독립투사라서, 깨침을 이룬 선구적 승려라서 또 《님의 침묵》의 시인이라서 꼭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오히려 한 평범한 인간으로서 그처럼 진정성을 지니고 일관되게 살아가려고 노력한 분이라는 점에서 저는 늘 그분을 존경하고 또 사랑하는 까닭이 있습니다. 

※출처:《해지기 전 그대 그리워지면》, 

문학수첩, 2003. 

 

 


 

□  한용운(1879~1944) 시인

 

 

 

1879년 8월 29일 충남 홍성군 결성면 성곡리에서 태어나 서당에서 한학을 공부하고 부친으로부터 의인들의 기개를 전해 들으며 자랐다.

 

동학농민운동과 의병 봉기를 목격한 후 속리사, 백담사 등 여러 곳을 전전하며 고뇌하는 시간을 보냈고, 1904년 출가한 후 변질된 한국불교의 개혁을 위해 노력했다. 

1913년 개혁방안을 제시한 지침서로 ‘조선불교유신론’을 발행했고, 승려교육을 위한 교재와 불교잡지 ‘유심’ 간행을 통해 불교 근대화와 대중화에 기여했다. 

 

독립운동에 몸담은 이후 무수히 형무소를 드나들었던 한용운은 젊은시절부터 일제의 감시가 집중된 요주의 인물이었다. 사진은 한용운의 수형기록표.


 
1919년 종교계를 중심으로 추진된 3‧1운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한 한용운은 민족대표의 한 사람으로서 독립선언서에 서명하고, 3월 1일 오후 2시 종로 태화관에서 독립선언식을 이끌었다.

이로 인해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기도 했다. 

1921년 출옥한 뒤에는 불교혁신운동, 민족운동, 물산장려운동 지원, 민족교육을 위한 사립대학 건립운동 등 다방면에서 활동했다. 

그러던 1926년 지금도 잘 알려진 시집 ‘님의 침묵’ 출간 등을 통해 민족의 희망을 노래하기도 했다. 

1933년부터 서울 성북동에 심우장이라는 집을 짓고 여생을 보내던 한용운은 그곳에서 집필 활동과 창씨개명 반대운동, 조선인 학병출정 반대운동을 펼쳤다. 

 

앞선 수형기록표와 대조했을 때 세월의 흐름을 느낄 수 있다. 일본은 독립운동가들을 위협하고 효과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사진을 이용했다. 1929년 조선일보 보도에 따르면 "사상운동자 명부 작성"에 수집된 사진만 2천여 장이며, 1920년 7월부터 1935년까지 전과자의 범죄 수법과 지문, 그리고 사진을 모아놓은 자료는 35만 4,736매에 달했다. 그들은 이 자료를 바탕으로 요주의 인물은 그 주변까지 면밀히 조사하고 관찰했다. 사진 = 국사편찬위원회



한용운은 1944년 6월 29일 해방을 불과 1년도 채 남겨두지 않았던 시점에 입적했다. 그는 사후 불교의식에 따라 화장 된 후 서울 망우리묘지에 안장됐다. 

정부는 민족대표로 3‧1운동에 앞장서고 불교개혁을 통한 사회개혁과 독립투쟁에 헌신한 한용운의 공적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했다. 

※출처: '미디어 붓' 기사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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