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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국수 - 문인수」, 어머니, 여름날 저녁 칼국수 반죽을 밀었다. 둥글게 둥글게 어둠을 밀어내면 달무리만하게 놓이던 어머니의 부드러운 흰 땅. 나는 거기 살평상에 누워 별 돋는 거 보았는데
나는나무 2024. 12. 29. 16:32
Peter Ilsted
Danish, 1861 - 1933
Young woman in a white summer dress
standing by an open window at Liselund
oil on canvas Painting
40.3 x 43.2cm
칼국수
문인수
어머니, 여름날 저녁 칼국수 반죽을 밀었다.
둥글게 둥글게 어둠을 밀어내면
달무리만하게 놓이던 어머니의 부드러운 흰 땅.
나는 거기 살평상에 누워 별 돋는 거 보았는데
그때 들에서 돌아온 아버지 어흠 걸터앉으며
물씬 흙 냄새 풍겼다 그리고 또 그렇게
솥 열면 자욱한 김 마당에 깔려· · · · · · 아 구름 구름밭,
부연기와 추녀 끝 삐죽히 날아 오른다.
이 가닥 다 이으면 통화가 될까.
혹은 긴 긴 동앗줄의 길을 놓으며
나는 홀로 무더위의 지상에서 칼국수를 먹는다.
※출처:《홰치는 산》, 천년의 시작, 2004.
□ 정끝별 시인 감상
어머니는 능숙한 솜씨로 반죽을 만들어 방으로 내밀었습니다.
네 살 위 언니는 빨래방망이로, 한 살 위 막내오빠는 소주병으로 무릎을 꿇고 앉아 밀가루를 뿌려가며 밀고 밀었습니다.
둥그렇게 밀린 칼국수반죽을 돌돌 말아 채 써는 것도 언니 몫이었습니다.
썰리기를 기다리고 기다리던 제가 드디어 바쁘게 밀가루를 뿌리며 탈탈 털었습니다.
털어서 채반에 어여쁘게 담아, 멸치나 바지락이나 팥 국물을 끊이고 계신 어머니에게 들고 갔습니다.
까마득한, 어린 시절 그 뽀얗던 밀가루 냄새가 바로 어머니 땅의 어둠 냄새이자 물씬한 흙 냄새였군요!
※출처:《정끝별의 밥시이야기, 밥》, 마음의숲, 2007.
□ 문인수 시인
1945년 경북 성주에서 태어나
1985년 『심상』 신인상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뿔』 『홰치는 산』『동강의 높은 새』『쉬!』 『배꼽』 『적막 소리』 등이 있으며,
김달진문학상 노작문학상 미당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출처: 창작과비평사 작가파일, 문인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