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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roen Buitenman 

Dutch, 1973

 

“Spring” (2005), 

dated 2005   

 

Oil and collage on canvas Painting 

180 x 299.5 cm 

 

 

 

 

봄길 

 

                    정호승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되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봄 길이 되어 

끝없이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강물은 흐르다가 멈추고 

새들은 날아가 돌아오지 않고 

하늘과 땅 사이의 모든 꽃잎은 흩어져도 

보라 

사랑이 끝난 곳에서도 

사랑으로남아 있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사랑이 되어 

한없이 봄 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출처:「사랑하다 죽어 버려라」, 창작과비평사, 1997. 

 


□  박길제 교사 감상 

 

어떤 말은 혼자서도 자기 의미를 가질 수 있지만, 어떤 말은 반드시 다른 말이 있어야만 그 의미를 획득하기도 합니다. 

바로 '끝'이라는 말이 그렇지요. 

'끝'은 반드시 '시작'이라는 말을 전제해야만 성립할 수 있습니다. 

젊은 날에는 흔히 '시작'이라는 말에 매료되어 살아갑니다. 

새로운 사랑의 시작, 새로운 직장의 시작, 새로운 삶의 시작. 

모든 시작은 축하와 환희의 박수 속에서 출발합니다. 

그러나 시작은 필연적으로 끝을 향해 갑니다. 

우리 인생의 어느 순간에 '끝'에 관한 사유가 찾아옵니다. 

'끝'이라는 말은 슬프기도 하고 아쉽기도 하지만,

많은 시작과 끝을 경험해 본 사람들에게 '끝'은 전혀 새로운 의미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정호승 시인 또한 무언가가 끝나는 곳에서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있습니다. 

끝은  어떤 지속성 혹은 영원성에 대한 우리들의 기대를 저버리기 때문에 슬픈 것으로 다가오지요. 

하지만 「봄길」은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 길이 되는 사람", "사랑이 끝난 곳에서도 / 사랑으로 남아 있는 사람"이 있다고 말합니다. 

끝에서 새로운 시작을 여는 것은 사람의 힘입니다. 

그 힘은 끝을 끝으로 인정하지 않고 "끝 없이 걸어가는 사람"으로부터 나옵니다. 

스스로 길이 되고 스스로 사랑이 되는 사람들이 있는 한,

모든 끝은 언제나 영원한 시작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출처:《국어교과서 작품읽기》, 창비, 2010. 

 


□  정호승 시인 

 

 

 

1950년 경남 하동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성장했으며,

경희대 국문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197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동시, 

1973년 대한일보 신춘문예에 시, 

1982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이 당선돼 작품활동을 시작했으며 ‘반시反詩’ 동인으로 활동했다. 

 

시집 《슬픔이 기쁨에게》, 《서울의 예수》, 《별들은 따뜻하다》, 《새벽편지》,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라》, 《이 짧은 시간 동안》, 《포옹》, 《밥값》, 《여행》, 《나는 희망을 거절한다》, 《당신을 찾아서》, 《슬픔이 택배로 왔다》와 시선집 《흔들리지 않는 갈대》, 《수선화에게》, 《내가 사랑하는 사람》, 동시집 《참새》를 냈다. 

 

이 시집들은 영한시집 《A Letter Not Sent(부치지 않은 편지)》, 《Though flowers fall I have never forgotten you(꽃이 져도 나는 너를 잊은 적 없다)》 외 일본어, 스페인어, 러시아어, 조지아어, 몽골어, 중국어 등으로 번역되었다. 산문집 《내 인생에 힘이 되어준 한마디》, 《내 인생에 용기가 되어준 한마디》, 《당신이 없으면 내가 없습니다》, 《외로워도 외롭지 않다》와 우화소설 《산산조각》이 있다. 

 

소월시문학상, 정지용문학상, 편운문학상, 가톨릭문학상, 상화시인상, 공초문학상, 김우종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대구에 정호승문학관이 있다. 

※출처: 교보문고 작가파일, 정호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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