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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na Enoch 

Israeli, 1946  

 

Red Room, 

2013 

 

Oil on canvas Painting  

70 x 50 cm. 

 

 

 

 

쉽게 씌어진 시  

 

                             윤동주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 첩방(六疊房)은 남의 나라. 

 

시인이란 슬픈 천명(天命)인 줄 알면서도 

한 줄 시를 적어 볼까.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 

보내 주신 학비 봉투를 받아 

 

대학 노트를 끼고 

늙은 교수의 강의 들으러 간다. 

 

생각해 보면 어린 때 동무들 

하나, 둘, 죄다 잃어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沈澱)하는 것일까?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나는 나에게 적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 

 

 

 

 

 

*육첩방: 돗자리(다다미) 여섯 장을 깐 일본식 방. 

*침전하는: 기분 따위가 가라앉는. 

*속살거리다: 작은 목소리로 자질구레하게 자꾸 이야기하다. 

 

 

 

※출처:「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연대출판부, 2004. 

 


□  오연경 교사 감상 

 

여러분은 '육첩방'이라는 말을 아세요? 

이 단어는 일본에서 유학을 했던 윤동주 시인이 만들어 낸 말입니다. 

일본식 가옥의 바닥에 까는 돗자리를 '다다미'라고 하는데, 

'첩'(疊. 일본어로 '조 じょう ')은 바로 그 다다미를 세는 일본어 단위입니다. 

 

윤동주는 이 일본어를 우리식 표현인 '방'고 합하여 일본말도 조선말도 아닌 제3의 말을 만들어 낸 것이지요. 

그러므로 '육첩방'이라는 말은 그 단어 하나만으로도 식민지 제국의 땅에 몸 붙이고 있는 조선인의 처지를 그대로 보여 줍니다. 

 

이 시를 읽고 있으면 식민지  조국에서 보내 주신 부모님의 땀방울로 너무 쉽게 문학을 꿈꾸고 있다고 자책하는, 

일본의 대학 문학부 소속 '조선 청년 윤동주'의 모습이 그대로 떠오르는 듯합니다. 

하지만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하는 것일까?"라고 읊조리는 슬픈 목소리와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라고 고백하는 비장한 목소리에는 윤동주 개인만이 아니라 식민지 현실을 살아 내야 했던 당시 젊은 청년들의 고되가 함께 묻어 있습니다. 

※출처:《국어교과서 작품읽기》, 창비, 2010. 

 


□  윤동주(1917~1945) 시인 

 

 

 

1917년 북간도 명동촌에서 출생하여 연희전문 문과를 졸업하였고 일본 동경 동지사대학에서 수학하였다.

1936년부터 여러 지면의 학생란에 동시, 시, 산문 등을 발표하던 중

1941년 자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간행하려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1943년 독립운동 혐의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1945년 구주 복강 형무소에서 의문의 병사를 당했다.

 

열다섯 살부터 시를 쓰기 시작하여 첫 작품으로 「삶과 죽음」, 「초 한 대」를 썼다. 발표 작품으로는 만주의 연길에서 발간된 『가톨릭 소년』지에 실린 동시 「병아리」, 「빗자루」, 「무얼 먹구 사나」, 「거짓부리」 등이 있다. 연희전문학교 시절 작품으로는 『조선일보』에 발표한 산문 「달을 쏘다」, 교지 『문우』지에 게재된 「자화상」, 「새로운 길」이 있다. 유작 「쉽게 쓰여진 시」는 사후에 『경향신문』에 게재되었다. 

 

 

 

1941년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하던 해에 절정기에 쓰인 작품들을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라는 제목으로 발간하려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자필 유작 3부와 다른 작품들을 모아 친구 정병욱과 동생 윤일주가, 사후에 본인의 뜻대로 1948년,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라는 제목으로 출간했다. 

 

29년의 짧은 생애를 살았지만 특유의 감수성과 삶에 대한 고뇌, 독립에 대한 소망이 서려 있는 작품들로 인해 대한민국 문학사에 길이 남은 전설적인 문인이다. 

※출처: 교보문고 작가파일, 윤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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