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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운 굴비 - 최승호」, 나는 왜 굴비를 두려운 존재라고 말해야 하나 석쇠 위에 구워 먹거나 찌개 끓여도 얌전히 있는 저 무력하기 짝이 없는 굴비를
나는나무 2024. 12. 29. 09:51
Marek Wlodarski
Polish | 1903 - 1960
The Meal,
1938
oil/canvas Painting
80.5×99.5 cm
무서운 굴비
최승호
나는 왜 굴비를 두려운 존재라고 말해야 하나
석쇠 위에 구워 먹거나 찌개 끓여도
얌전히 있는
저 무력하기 짝이 없는 굴비를
굴비는
소금에 절여 통째로 말린 조기라 한다
혹은 건석어乾石魚
굴비, 나의 敵, 나의 反逆, 나의 굴비
비굴한 삶은 통째로
굴비를 닮아간다
그물을 뒤집어 쓰고 퍼덕이다가
결국 장님에 벙어리
귀머거리가 된 굴비를
나는 왜 두려운 존재라고 말해야 하나
※출처: 《고슴도치의 마을》, 문학과지성사, 1994.
□ 정끝별 시인 감상
귀양 간 이자겸이 법성포 조기 맛에 반해 절이고 말려 임금께 바쳤는데,
그게 아부 아닌 백성된 도리임을 굳이 알리려고 '굴비(屈非, 비겁하게 굴하지 않는다)'라 써보냈다는데,
'비굴'이라고 글자를 바꾸니 뜻도 완전히 바뀌는군요.
입맛 돋우고 영양 만점이라 '조기(助氣, 기운을 돕는다)'로도 불리는 모습과 딴판입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굴비가, 내가 제일 싫어하는 내 모습을 닮았다니!
그럼 '조기만도 못한 놈'이라는 말은?
※출처:《정끝별의 밥시이야기, 밥》, 마음의숲, 2007.
□ 최승호 시인
1954년 강원도 춘천에서 태어나
1977년《현대시학》으로 등단했습니다.
숭실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를 지냈습니다.
『대설주의보』 『세속도시의 즐거움』 『눈사람 자살 사건』 『방부제가 썩는 나라』 『북극 얼굴이 녹을 때』 등 17권의 시집과 우화집 『마지막 눈사람』을 냈습니다.
오늘의 작가상, 김수영 문학상, 대산문학상, 현대문학상 등을 받은 한국을 대표하는 시인입니다.
어린이를 위한 한글그림 동시집 『물땡땡이들의 수업』과 『말놀이 동시집』 『최승호 방시혁의 말놀이 동요집』 등 순수한 동심의 세계를 놀라운 상상력으로 그려내고 있습니다.
※출처: 상상출판사 작가파일, 최승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