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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by Mulligan  

British,  1969

 

Anais mixed 

 

media on canvas Painting   

99 x 99 cm

 

 

나  

 

                 김광규  

 

살펴보면 나는 

나의 아버지의 아들이고 

나의 아들의 아버지고 

나의 형의 동생이고 

나의 동생의 형이고 

나의 아내의 남편이고 

나의 누이의 오빠고 

나의 아저씨의 조카고 

나의 조카의 아저씨고 

나의 선생의 제자고 

나의 제자의 선생이고 

나의 나라의 납세자고 

나의 마을의 예비군이고 

나의 친구의 친구고 

나의 적의 적이고 

나의 의사의 환자고 

나의 단골 술집의 손님이고 

나의 개의 주인이고 

나의 집의 가장이다 

 

그렇다면 나는 

아들이고 

아버지고 

동생이고 

형이고 

남편이고 

오빠고 

조카고 

아저씨고 

제자고 

선생이고 

납세자고 

예비군이고 

친구고 

적이고 

환자고 

손님이고 

주인이고 

가장이지 

오직 하나뿐인 

 

나는 아니다 

 

과연 

아무도 모르고 있는 
나는 

무엇인가 

그리고 

지금 여기 있는 

나는 

누구인가 

 

 

 

 

 

※출처:《우리를 적시는 마지막 꿈》, 문학과지성사, 1979 

 
우리를 적시는 마지막 꿈
짧은 글귀 안에 담긴 심오한 뜻. 이 책은 문학적 상상력에 목마른 현대인들을 위한 시집이다. 한 장씩 넘길 때마다 작가의 심오한 뜻을 파악하는 재미가 있다.
저자
김광규
출판
문학과지성사
출판일
1979.10.01

 

 


□  박길재 교사 감상 

 

'자기 소개서'를 써 본 적 있나요? 

학년 초가 되면 선생님께서는 여러분의 솔직한 자기 소개서를 요구하죠. 

여러분은 자기소개 글을 쓰면서 최선을 다해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내려고 애쓰거나, 아니면 매번 쓰던 버릇대로 자신과 관련된 정보를 대충 늘어놓고 맙니다. 

어느 쪽이든 쓸 때마다 어렵게 느껴집니다. 

어찌어찌해서다 썼다 해도 다시 읽어 보면 그 안에 나오는 사람이 과연 '나' 자신인지 확신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나'는 늘 표현하기어렵고 다가 갈 수 없는, 참 알 수 없는 존재입니다. 

'나'를 누구라고 말해야 가장 정확하게 드러낼 수 있을까요? 

 

김광규 시인의 「나」는 바로 이처럼 '나 자신이 누구일까?'하는 질문에 대한 답입니다. 

시인은 그런 질문에 답하기 위해 자신을 둘러싼 인간관계를 먼저 살펴봅니다. 

이때 시인은 '아들'이자 '아버지'이고, '동생'인 동시에 '형'입니다. 

'제자'이면서 '선생'이고 '친구'이자 '적'입니다. 

여러분은 어떨까요? 

학교에서는 학생이지만 집에서는 어린 동생을 돌보고 가르치는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누나나, 오빠의 동생이거나 동생의 누나나 오빠가 되기도 합니다. 

이렇듯 '나'는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누군지가 결정되는 존재입니다. 

세상에 나혼자 있다고 생각해 보세요. 

자신을 누구라고 말하며, 누구에게 얘기할 수 있을까요? 

자기 소개서에서 가족 관계나 자신과 친한 사람들을 밝히면서 여러분 자신을 드러내려 했던 것은 관계 속에서 '나'가 누구인지 드러나기 때문이지요. 

※출처:《국어교과서 작품읽기》, 창비, 2010. 

 


□ 김광규 시인 

 

 

 

1941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대 및 동대학원 독문과를 졸업하고, 독일 뮌헨에서 수학했다. 

1975년 계간 『문학과지성』을 통해 등단한 이후 1979년 첫 시집 『우리를 적시눈 마지막 꿈』을 발표하여 제1회 녹원문학상을 수상했고, 1983년 두번째 시집 『아니다 그렇지 않다』로 제4회 김수영문학상을, 1994년 다섯번째 시집 『아니리』로 제4회 편운문학상을, 2003년 여덟번째 시집 『처음 만나던 때』로 제11회 대산문학상을 수상했다. 

 

그 밖에 시집 『크낙산의 마음』『좀팽이처럼』『물길』『가진 것 하나도 없지만』, 시선집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대장간의 유혹』『누군가를 위하여』, 산문집 『육성과 가성』『천천히 올라가는 계단』, 학술연구서『권터 아이히 연구』 등을 펴냈다. 그리고 브레히트의 『살아남은 자의 슬픔』, 하인리히 하이네 시선, 페터 빅셀 산문집 등을 우리말로 소개하는 한편, 영역시집 『Faint shadows pf love』, 독역시집 『Die Tiefe der Muschel』 등을 간행했다. 

 

독일 어문학술원의 프리드리히 군돌프 문학상을 수상했으며 현재 한양대 명예교수(독문학)로 있다. 

※출처: 문학과지성사 작가파일, 김광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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