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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르고스 스타토풀로스
Giorgos Stathopoulos 
Greek, 1944 

BIRDS

oil on hardboard
Painting
40x50 cm 

 

 

 

 

 

참새와 함께 걷는 숲길에서 

 

                                        유하   

 

 

바람이 낳은 달걀처럼 

참새떼가 우르르 떨어져 내린 

탱자나무 숲 

기세등등 내뻗은 촘촘한 나무 가시 사이로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참새들은 무사 통과한다 

 

(그 무사통과를 위해 

참새들은 얼마나 바람의 살결을 닮으려 애쓰는가) 

 

기다란 탱자나무 숲 

무성한 삶의 가시밭길을 뚫고 

총총히 걸어가는 참새들의 행렬 

 

(가시에 찔리지 않기 위해 

참새들은 얼마나 가시의 마음을 닮으려 애쓰는가) 

 

· · · · · · 난 얼마나 생의 무사통과를 열망했는가 

 

 

 

 

 

※출처:《세상의 모든 저녁》, 민음사, 2007 

 

 


 

□  황인숙 시인 감상 

 

이 시가 실린 시집 《세상의 모든 저녁》에서 「세상의 모든 저녁 3」을 읽다가, 무릎을 치는 대신, 나는 얼른 옮겨 적었다. "헤비메탈을 부르다 뽕짝으로 창법을 바꾸는 / 그런 삶은 살지 않으리라". 

 

시집이 나온 당시, 내 뜨악했던 감상 원인을 비로소 알 것 같았다. 헤비메탈 쪽인 줄만 알던 가수가 '뽕짝'을 부르는 걸 볼 때, 재밌기도 하지만 어쩐지 '손이 오글거리는' 듯한, 그런 기분이었던 것이다. 그전의 유하는 세련된 솜씨로 시대를 찌르고 휘저으며 요리하던, 영약해 보일 정도로 재기 넘치는 도시 시인이었던 것이다. 

 

긴 세월이 흐른 이제 내게도 그때는 없었던 미감(美感)이 생긴 것 같다. 구성진 '뽕짝'의 눅눅한 아름다움을 능히 알 만한 나이가 돼버린 것이다(유하 시들이 '뽕짝'이었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다른 시집들에서 유하가 옹호하고, 의도적으로 표방했던 '키치'의 발랄함 대신 시집 《세상의 모든 저녁》을 채우고 있는 건 진솔함이랄지 어떤 진득함이다. 

 

시골 풍경이나 기후에 기대어 삶에 대한 성찰과 슬프고 여린 마음을 출중한 언어감각으로 조리한, 그 깊은 맛! 그전의 유하 색깔이 바이올렛이라면, 《세상의 모든 저녁》은 퍼플이라고 할까. 

 

"난 얼마나 생의 무사통과를 열망했는가". 

나도 그렇다! 그러나 무사하지 않아서 시를 잉태했고, 무사하지 않아도, 무사하지 않은 채, 우리는 생을 통과한다. 

"탱자 가시 울창한 삶의 목구멍이여,"(「저녁 숲으로 가는 길 2」에서) 

 

유하는 이제 시 안 쓰나? 유하도 보고 싶고, 그의 새로운 시도 보고싶다. 

※출처:《하루의 시》, 책읽는수요일, 2016. 

 

 


 

□  유하 시인 

 

 

 

전북 고창에서 태어났다.

세종대 영문과와 동국대 대학원 영화과를 졸업했고,

1988년 『문예중앙』을 통해 등단했다.

 

시집으로 『武林일기』(1989),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1991), 『세상의 모든 저녁』(1993), 『세운상가 키드의 사랑』(1995), 『나의 사랑은 나비처럼 가벼웠다』(1999), 『천일마화』(2000) 등이 있다.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했다.

21세기 전망 동인으로 활동 중이다. 

 

Filmography
2012 하울링 각본 / 감독
2008 쌍화점 각본 / 감독
2006 비열한 거리 각본 / 감독
2004 말죽거리 잔혹사 각본 / 감독
2001 결혼은 미친 짓이다 각본 / 감독
1993 바람 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 각본 / 감독  

※출처:문학과지성사 작가파일, 유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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