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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known

Harbor Town

Oil on canvas 
29 3/4 x 39 3/4 inches 

 

 

 

 

 

줄포만 

 

               안도현  

 

 

바다는 오래된 격지를 뜯듯이 껍질을 걷어 내고 있었다 

 

개펄이 오목한 볼을 실룩거리며 첫 아이 가진 여자처럼 불안해서 둥그스름 배를 내밀었다 

 

아버지는 붉은어깨도요 1664마리, 민물도요 720마리, 알락꼬리마도요 315마리에게 각각 날개를 달아주고 눈알을 닦아주었다 그들의 부리를 매섭게 갈아 허공에 띄워 올리는 일이 남았다 

 

가을 끄트러머리쯤에 포구가 폐쇄된다고 한다 

 

아버지의 눅눅한 사타구니로 자글자글 습기가 번질 것 같다 어머니가 먼저 녹슬고 서글퍼져서 석유곤로에 냄비를 얹겠지 

 

나는 가무락조개 빈 껍질처럼 하얗고 얇구나 수평선을 찢을 배 한 척 어디 없나 

 

 

 

 

※출처:《시시사》, 2017년 9-10월호, 한국문연 

 

 

 


 

□  정끝별 시인 감상 

 

가을이면, '줄풀'의 일종인 은빛 갈대밭이 장관을 이루는 줄포(茁浦)에 가고 싶다. 게들이 많아 게를 먹이로하는 붉은어깨도요 민물도요 알락꼬리마도요 철새들이 화르르 떠나고 흰물떼새 괭이갈매기 흰뺨검둥오리 텃새들이 텃세를 떠는, 뭐니뭐니해도 일몰이 끝내주는 변산반도 끝에 서고 싶다.

 

"사내 열두 살이면 / 피는 꽃이나 맑은 햇살이나 좋은 여자의 얼굴이 / 눈에 그냥 비치는 게 아니라 / 그 가슴에까지 울리어 오기 비롯는 나이"를 헤아려보거나 

 

"되잖은 시 몇 편으로 얼굴을 가리고 / 몰래 만나는 여자도 없이 살았다고 / 지는 해를 바라보고 섰"고 싶다. 포구는 폐쇄되고 배들마저 사라져 습습한 습기가 자글자글 번지는 그 줄포 바닷가 석유곤로에서 끓고 있는 말갛고 칼칼한 뜨거운 가무락조개탕 국물을 떠먹고 싶다. 

 

가을 끄트머리쯤에는 서쪽이 제격이다. 

※출처:《삶은 소금처럼 그대 앞에 하얗게 쌓인다》, 

해냄, 2018. 

 

 


 

 

□  안도현 시인 

 

 

 

 

 

1961년 경상북도 예천에서 태어나 원광대 국문과와 단국대 대학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1981년 「매일신문」 신춘문예와 198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첫 시집 『서울로 가는 전봉준』을 비롯해 『모닥불』, 『그대에게 가고 싶다』, 『외롭고 높고 쓸쓸한』, 『그리운 여우』, 『바닷가 우체국』, 『아무것도 아닌 것에 대하여』, 『너에게 가려고 강을 만들었다』, 『간절하게 참 철없이』, 『북항』, 『능소화가 피면서 악기를 창가에 걸어둘 수 있게 되었다』까지 11권의 시집을 냈다.

시와시학 젊은 시인상, 소월시문학상, 노작문학상, 이수문학상, 윤동주상, 백석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나무 잎사귀 뒤쪽 마을』, 『냠냠』, 『기러기는 차갑다』 등의 동시집과 『물고기 똥을 눈 아이』, 『고양이의 복수』, 『눈썰매 타는 임금님』 등 여러 권의 동화를 썼다. 

 

어른을 위한 동화 『연어』는 국내에서 100만 부를 넘긴 베스트셀러로 15개국의 언어로 해외에 번역 출간되었다. 『백석평전』, 『그런 일』 등의 산문을 냈다. 

 

현재 단국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있다. 

※출처: 예스24 작가파일, 안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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