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오늘 - 구상」, 오늘도 신비의 샘인 하루를 맞는다 이 하루는 저 강물의 한 방울이 어느 산골짝 옹달샘에 이어져 있고 아득한 푸른 바다에 이어져 있듯 과거와 미래와 현재가 하나이다.
나는나무 2024. 12. 22. 12:07
Kazimierz Mikulski
Polish, 1918 - 1998
PRZED ODLOTEM,
1989
oil, canvas Painting
73 x 60 cm
오늘
구상
오늘도 신비의 샘인 하루를 맞는다
이 하루는 저 강물의 한 방울이
어느 산골짝 옹달샘에 이어져 있고
아득한 푸른 바다에 이어져 있듯
과거와 미래와 현재가 하나이다.
이렇듯 나의 오늘은 영원 속에 이어져
바로 시방 나는 그 영원을 살고 있다.
그래서 나는 죽고 나서부터가 아니라
오늘서부터 영원을 살아야 하고
영원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한다.
마음이 가난한 삶을 살아야 한다.
마음을 비운 삶을 살아야 한다.
□ 김재홍 문학평론가 감상
우리는 오늘도 하루하루, 한 순간 한 순간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한순간의 연속이 이어져 시간을 이루고 하루가 되고 다시 한 달이 되고 일년이 되어 마침내 한평생이 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모든 존재는 시간의 존재론에서 볼 때 한 순간을 살아가는 것이지만 그 한 순간 속에서 영원을 느끼고 체험하며 살아갈 수 있기 마련인 것이지요. 마치 "강물의 한 방울이/ 산골짝 옹달샘에 이어져 있고/ 아득한 푸른 바다에 이어져 있듯"이 우리의 삶도 순간의 연속을 살아가지만, 그것은 영원으로 흘러 들어간다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의 "오늘은 영원 속에 이어져/ 바로 시방 나는 그 영원을 살고 있"는 것이라는 뜻이 되겠지요. 이 말 속에는 하루하루를 뜻있게, 값지게 살아감으로써 순간 속에서 영원을 호흡하면서, 영원을 누리며 살아가야 한다는 잠언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삶의 유한함, 생의 짧음을 아쉬워하거나 비탄해하지 말고 순간 속에서 영원을 가치 있게 살아야 한다는 깨달음을 담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한 가치 있는 삶의 모습이란 "마음이 가난한 삶을 살아야 한다/ 마음을 비운 삶을 살아야 한다"라는 결구와 같이 정신적인 삶, 무소유의 삶을 살아가는 데서 얻어질 수 있다는 깨달음과 확신을 보여줍니다. 이즈음과 같은 물질만능시대, 인간성 상실의 시대에 참 인간성의 회복 또는 바람직한 정신적인 가치 덕목을 제시한 것이라고 하겠지요.
말하자면 물질성, 욕망과 소유에 집착하는 삶이 아니라 정신성, 영성(靈性)과 존재 그 자체를 살아가야 한다는 순결한 정신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한 영성이 깃들인 삶, 무소유의 삶을 지향해 갈 때 우리는 비로소 '영원에 합당한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되며,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순간을 살다가는 존재로서 유한한 인간이 순간 속에서나마 영원을 살아갈 수 있게 될 것을 자명한 이치이기 때문이지요.
이 시에서 우리는 노대가 구상 시인의 해안과 예지, 그리고 영성 깃든 통찰력의 높이와 깊이를 헤아려 볼 수 있게 됩니다. 미당과 혜산 등 해방 전 등단한 노대가들이 대부분 세상을 떠난 지금 우리 시단의 원로로서 또 선지자로서 구상의 가톨리시즘에 기반한 시정신의 높이와 깊이는 이 시대에 우리가 본받아야 할 소중한 시적 자산이자 정신적인 가치 덕목이 아닐 수 없다고 하겠습니다.
※출처:《작은 들꽃이 보고 싶을 때》, 문학수첩, 2003.
□ 구상 시인
1919년 서울에서 태어나 일본 니혼 대학 종교과를 졸업하였다.
해방 후 소련 점령하의 원산에서 시집 『응향凝香』의 발표로 핍박을 받게 되어 서울로 탈출하였다.
시집으로 『초토의 시』 『밭 일기』 『구상 시전집』 『홀로와 더불어』 외 다수가 있으며 수상집, 희곡, 시나리오집, 묵상집, 서간집, 사회평론집 등이 있다. 《연합신문》 문화부장, 《영남일보》 《경향신문》 《가톨릭신문》 편집국장 및 논설위원을 지냈고,
효성여자대학교, 서강대학교, 서울대학교, 중앙대학교 등에서 강의하였다. 미국 하와이대학교 초빙교수를 역임하고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을 지냈다.
서울시문화상ㆍ대한민국문학상 본상ㆍ대한민국예술원상을 수상했으며 금성화랑 무공훈장ㆍ국민훈장 동백장 수훈, 금관 문화훈장이 추서되었다.
※출처: 교보문고 작가파일, 구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