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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막한 식욕 - 박목월」, 모밀묵이 먹고 싶다. 그 싱겁고 구수하고 못나고도 소박하게 점잖은 촌 잔칫날 팔모상床에 올라 새사돈을 대접하는 것. 그것은 저문 봄날 해질 무렵에 허전한 마음이
나는나무 2024. 12. 23. 09:37
Alicja Kappa
Polish, 1973
Zapachy lata,
2019
oil, acrylic, schagmetal, canvasPainting
100 x 100 cm
적막한 식욕
박목월
모밀묵이 먹고 싶다.
그 싱겁고 구수하고
못나고도 소박하게 점잖은
촌 잔칫날 팔모상床에 올라
새사돈을 대접하는 것.
그것은 저문 봄날 해질 무렵에
허전한 마음이
마음을 달래는
쓸쓸한 식욕이 꿈꾸는 음식.
또한 인생의 참뜻을 짐작한 자의
너그럽고 넉넉한
눈물이 갈구하는 쓸쓸한 식성.
아버지와 아들이 겸상을 하고
손과 주인이 겸상을 하고
산나물을
곁들여 놓고
어수룩한 산기슭의 허술한 물방아처럼
슬금슬금 세상 얘기를 하며
먹는 음식.
그리고 마디가 굵은 사투리로
은은하게 서로 사랑하며 어여삐 여기며
그렇게 이웃끼리
이 세상을 건너고
저승을 갈 때,
보이소 아는 양반 앙인기요
보이소 윗마을 이생원 앙인기요
서로 불러 길을 가며 쉬며 그 마지막 주막에서
걸걸한 막걸리 잔을 나눌 때
절로 젓가락이 가는
쓸쓸한 식욕.
※출처:《박목월 시전집》, 서문당, 1984.
□ 정끝별 시인 감상
따뜻한 아랫목에 앉아 먹었던 어쩌다가의 찹쌀떡 한 개, 참기름 친 양념간장을 뿌린 메밀묵 몇 점. 많았던 입들 때문에 날개 돋쳐 순식간에 끝나버렸던 출출했던 한 겨울밤의 잔치.
메~밀묵 사려 찹쌀떡~, 소리 아련한 겨울 깊을 수록, 그 지루하고 밍밍하고 꾸밈없는 '모밀묵'이 먹고 싶다.
'정갈한 노친네의 내음새 같은 매밀내'가 맡고 싶다.
앙잉기요 앙잉기요 왁살스런 사투리 들으며, 육수에 다진 김치를 송송 썰어 넣은 '모밀묵밥'이 먹고 싶다!
※출처:《정끝별의 밥시이야기, 밥》, 마음의숲, 2007.
□ 박목월(1916~1978) 시인
1940년을 전후한 시대로부터 탁월한 모국어로 한국인의 느낌과 생각을 노래해 우리 민족의 감수성과 상상력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높은 경지를 보여준 대표적 민족시인 박목월. 교과서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여 사춘기 시절의 감성을 잔잔하게 울려주는 그의 본명은 박영종으로 1916년 경상남도 고성에서 태어났다.
1933년 대구계성중학교 재학 중 동시 「통딱딱 통딱딱」이 〈어린이〉지에, 「제비맞이」가 〈신가정〉지에 당선되었으며, 1935년 계성중학교를 졸업하고 1940년 정지용의 추천을 받아 시《문장》에 〈길처럼〉을 발표하여 등단하였다.
1916년 경북 경주에서 태어났으며 대구 계성중학교를 졸업했다. 1939년 정지용의 추천에 의해 《문장》지를 통해 등단했으며, 한국시인협회 회장, 한양대 문리대학장, 《심상》 발행인 등을 역임했다. 아시아 자유문학상, 서울시 문화상, 대한민국 문예상, 예술원상 등을 수상했다.
저서로 박두진, 조지훈과의 3인 합동 시집 《청록집》과 개인 시집 《산도화》, 《난·기타》, 《청담》, 《경상도의 가랑잎》, 연작시 〈어머니〉, 〈구름에 달 가듯이〉, 〈무순〉, 수필집 《밤에 쓴 인생론》, 《친구여 시와 사랑을 이야기하자》, 《그대와 차 한 잔을 나누며》, 《달빛에 목선 가듯》, 동시집 《산새알 물새알》 등이 있다.
1978년에 작고하였다.
※출처: 예스24 작가파일, 박목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