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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b Warnick

 

Dog, 

2012   

 

Screenprint in colours Prints & Graphic Art 

sheet 355 x 458 

 

 

 

밥그릇 경전  

 

                    이덕규 

 

 

어쩌면 이렇게도 

불경스런 잡념들을 싹싹 핥아서 

깨끗이 비워놨을까요 

볕 좋은 절집 뜨락에 

가부좌 튼 개밥그릇 하나 

고요히 반짝입니다 

 

단단하게 박힌 

金剛말뚝에 묶여 무심히 

먼산을 바라보다가 어슬렁 일어나 

앞발로 굴리고 밟고 

으르렁 그르렁 물어뜯다가 

끌어안고 뒹굴다 찌그러진, 

어느 경지에 이르면 

저렇게 제 밥그릇을 마음대로 

가지고 놀 수 있을까요 

 

테두리에 

잘근잘근 씹어 외운 

이빨경전이 시리게 촘촘히 

박혀있는, 그 경전 

꼼꼼이 읽어내려 가다보면 

어느 대목에선가 

할 일 없으면 

가서 "밥그릇이나 씻어라"* 그러는 

 

 

 

*조주선사와 어느 학인과의 선문답 

 

 

 

 

 

 

※출처:《애지》, 2004년 봄호. 

 


□  정끝별 시인 감상 

 

밥그릇 경전이라니, 밥이야말로 태고적부터의 가장 오랜 종교겠습니다.

'밥교'라는! 

불경스런 잡념까지 싹싹 핥아가며 밥 잘 비웠겠다, 

빈 밥그릇 온몸으로 저리 맘껏 가지고 놀았으니 이제 일없이 '밥그릇이나 씻으러 가야 (洗鉢盂去세발우거)'겠습니다. 

제 밥그릇 잘 비우고 제 밥그릇 잘 씻는 일이야말로 선禪의 경지입니다. 

밥교의 제1교리겠지요. 

개의 불성佛性이며 개의 평상심平常心이 저러하거늘 · · · · · ·. 

※출처:《정끝별의 밥시이야기, 밥》, 마음의숲, 2007. 

 


□  이덕규 시인 

 

 

 

 

1998년 『현대시학』을 통해 등단했다.

 

시집으로 『다국적 구름공장 안을 엿보다』 『밥그릇 경전』 『놈이었습니다』가 있다.

 

현대시학작품상, 시작문학상, 오장환문학상을 수상했다. 

※출처: 교보문고 작가파일, 이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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