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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성 훈 
Han Seunghun 
b.1982.

Piece of Mind 
2022 

oil on canvas 
Painting 
60.6×60.6cm 

 

 

 

우편   

 

                       이장욱  

 

 

모든 것은 이미 배달되었다. 

그것이 늙은 우편배달부들의 결론, 

 

당신이 입을 벌려 말하기 전에 내가 

모든 말을 들었던 것과 같이 

 

같은 계절이 된 식물들 

외로운 지폐를 세는 은행원들 

먼 고백에 중독된 여인들 

그순간 

 

누가 구름의 초인종을 눌렀다. 

뜨거운 손과 발을 배달하고 있다. 

우리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에나 있는 

바로 그 계절로 

 

단 하나의 답장이 도착할 것이다. 

조금 더 잔인한 방식으로 

 

 

 

 

 

 

 

 

※출처:《영원이 아니라서 가능한》, 

문학과지성사, 2016. 

 
영원이 아니라서 가능한
시인이자 소설가, 평론가인 이장욱의 네번째 시집 『영원이 아니라서 가능한』. 문득 출몰해 서서히 사라지며 허공을 맴도는 존재들, 그리고 모호함 속에서 가능해지는 이장욱 특유의 어떠한 세계를 대면하게 하는 61편의 시들이 수록돼 있다.
저자
이장욱
출판
문학과지성사
출판일
2016.06.24

 


 

□  정끝별 시인 감상 

 

늙은 우편배달부는 매일매일, 참으로 오랜 시간을, 이 세상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배달했을 것이다.

그런 그가 말한다. 모든 것은 이미 배달되었다고, 

 

초인종이 울리고, 정기적인 식사, 같은 목소리의 통화, 중독된 고백, 비슷한 슬픔, 잔인한 단 하나의 답장 · · · · · · 그렇게 나는 배달되었다. 고로 존재한다, 이 늙은 계절에, 나는 이미 씌어졌고 나는 그것을 따라 산다.

반복되는 계절마다 돈을 세고 중독된 사랑을 하고, 그리고 죽을 것이다. 

 

성경도 기록하고 있다, 단 한 권의 책은 이미 씌어졌으며, 모든 말들은 다 발설되었다고, 모든 것은 예정되었고, 예정된 단 하나의 답장을 향해 간다. 

"영원이 아니라서 가능한" 일이다. 끝이 있어 다행한 일이다. 

※출처:《삶은 소금처럼 그대 앞에 하얗게 쌓인다》,

해냄, 2018. 

 


 

□  이장욱 시인 

 

 

 

시인, 소설가, 평론가. 

1994년 『현대문학』에 시를 발표하며 등단했다. 

 

시집 『내 잠 속의 모래산』 『정오의 희망곡』 『생년월일』 등이 있다. 

2005년 문학수첩작가상을 받으며 소설을 발표하기 시작했고, 

소설집 『고백의 제왕』 『기린이 아닌 모든 것』 , 

장편소설 『칼로의 유쾌한 악마들』 『천국보다 낯선』 등을 출간했다. 

 

러시아문학의 정통한 연구자이자 시단에 ‘미래파 논쟁’을 일으킨 평론가이기도 하다. 

※출처: 교보문고 작가파일, 이장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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